깨끗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샤워기 헤드, 신경 많이 못쓰셨죠? 매일 아침 당신이 마시는 ‘세균 미스트’, 범인은 바로 샤워기 헤드입니다.
오늘은 다시 욕실로 돌아오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변기나 칫솔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가장 깨끗해지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바로 ‘샤워기‘입니다.
따뜻한 물을 틀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 몸이 노곤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떤 분들은 샤워하면서 입을 벌리고 물을 받아 마시거나 가글을 하기도 하죠. 양치할 때 샤워기 물을 컵에 받아 헹구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시원한 물줄기가 사실은 세균이 득실거리는 ‘오염된 물’이라면 어떨까요? 샤워기 겉면은 반짝이는 크롬 도금으로 깨끗해 보이지만, 그 속은 검은 곰팡이와 물때, 그리고 치명적인 폐 질환 원인균들이 아파트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샤워기 헤드 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밥 먹기 전이라면,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샤워기 헤드 속, 그들만의 은밀한 생태계
우리는 샤워기를 ‘물이 지나가는 통로’라고만 생각합니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계속 물이 흐르니까 깨끗할 거라고 믿죠.
하지만 샤워를 하지 않는 나머지 23시간 동안, 샤워기 내부에는 물이 고여 있습니다. 욕실은 항상 습하고, 온도는 따뜻합니다. 고여 있는 물은 미생물에게 최고의 서식지입니다.
샤워기 헤드를 오랫동안 분해하지 않았다면, 그 내부는 100% 확률로 *바이오필름(Biofilm)’에 점령당해 있습니다. 물속의 미네랄(석회) 성분과 세균들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끈적끈적한 점액질 막이죠.
혹시 샤워기 물줄기가 예전보다 약해졌거나, 물줄기가 한쪽으로 삐딱하게 나가는 구멍이 있나요? 그건 구멍이 막힌 게 아니라, 세균 덩어리와 물때가 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그 세균 덩어리를 통과한 물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샤워기 헤드, 폐도 공격?
단순히 “더럽다” 정도가 아닙니다. 샤워기 속 물때에서 발견되는 세균 중 가장 무서운 녀석은 바로 ‘비결핵 항산균(Nontuberculous Mycobacteria, NTM)’입니다.
이름이 좀 어렵죠?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결핵균의 사촌쯤 되는 녀석인데, 결핵은 아니지만 폐에 침투해서 비슷한 병을 일으킵니다. 주로 흙이나 물 자연계에 널리 퍼져 있는데, 유독 샤워기 헤드의 바이오필름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 연구팀이 가정집 샤워기 헤드를 수거해 조사했더니, 무려 30% 이상의 샤워기에서 이 항산균이 검출되었습니다. 일반 수돗물보다 샤워기 헤드 내부에서 100배나 더 많이 증식하고 있었죠.
왜 샤워기가 위험한가요? 이 균은 물을 마셔서 감염되는 것보다, ‘에어로졸(미세 물방울)’ 형태로 흡입할 때 훨씬 치명적입니다.
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올 때 수많은 미세 물방울이 안개처럼 퍼지죠? 샤워 부스 안에 가득 찬 수증기 속에 이 세균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서 깊게 숨을 쉬며 샤워를 합니다. 그때 이 세균들이 기도를 타고 폐 깊숙이 침투하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은 면역력으로 이겨내지만, 면역력이 약하거나 폐가 약한 분들이 감염되면 ‘NTM 폐 질환’에 걸릴 수 있습니다. 증상은 기침, 가래, 피 객혈, 만성 피로 등 결핵과 매우 비슷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아파트의 노후된 배관과 샤워기 위생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피부와 눈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폐뿐만이 아닙니다. 샤워기 세균은 피부와 눈 건강도 위협합니다.
① 등드름과 가드름의 원인
등이나 가슴에만 유독 여드름이 나서 고생하시는 분들, 바디워시를 바꿔보고 때를 밀어도 소용없다면 샤워기를 의심해 보세요.
샤워기 속 ‘말라세지아 곰팡이’나 ‘황색포도상구균’이 섞인 물이 피부에 닿으면 모낭염을 유발합니다. 깨끗이 씻으려다 오히려 균을 바르고 나오는 꼴이죠.
② 눈병(결막염) 렌즈를 끼시는 분들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샤워하면서 렌즈 낀 채로 세수하다가 물이 눈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죠? 오염된 샤워기 물속 ‘가시아메바’가 각막에 침투하면 심각한 경우 실명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샤워기 호스(줄), 숨겨진 또 하나의 복병
헤드만 문제일까요? 헤드와 연결된 긴 ‘샤워기 호스’는 더 심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메탈 호스(주름진 은색 줄)를 생각해 보세요. 그 주름 사이사이에 낀 검은 때, 칫솔로 닦아 보신 적 있나요?
그건 겉면일 뿐입니다. 호스 내부는 고무 튜브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한번 설치하면 몇 년 동안 청소는커녕 들여다보지도 않습니다. 3년 이상 쓴 호스를 잘라보면, 내벽에 시커먼 곰팡이 슬러지가 꽉 차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무리 비싼 필터 샤워기 헤드를 끼워봤자, 물이 오염된 호스를 타고 올라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샤워 전, 1분의 기다림 (중요 꿀팁)
마지막으로 돈 한 푼 안 드는 꿀팁 하나를 드립니다. 샤워기를 켜자마자 바로 머리에 물을 뿌리지 마세요.
수도꼭지를 틀고 처음 1분 동안 나오는 물은 밤새 배관과 호스 안에 고여 있던 ‘가장 더러운 물’입니다. 세균 농도가 가장 높은 구간이죠.
처음 나오는 물은 바닥 청소용으로 흘려보내거나 세숫대야에 받아두고, 1분 뒤부터 몸에 물을 대세요. 이 간단한 습관 하나가 폐로 들어가는 세균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글을 마치며
독자 여러분, 오늘 저녁 샤워하실 때 한번 위를 쳐다보세요. 물이 나오는 구멍 주변에 거뭇거뭇한 얼룩이 보이시나요? 혹은 물줄기가 시원하게 뻗지 못하고 찔끔거리는 구멍이 있나요? 그렇다면 이번 주말엔 식초와 비닐봉지를 준비하세요.
그동안 우리가 마신 게 ‘물’이 아니라 ‘곰팡이 국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주방으로 다시 이동해서 [냉장고의 배신: 얼음과 채소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는 세균이 얼어 죽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추위를 사랑하는 더 무서운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